전국노래자랑 엠씨 교체 등에 대한 의견

<뉴스9>, <역사저널 그날>, <홍김동전>, <옥탑방의 문제아들>, <전국노래자랑>. 사장이 바뀐 후 KBS에서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바뀐 프로그램들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 메인MC(앵커)였던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뉴스9: 이소정, 역사저널 그날: 최원정, 홍김동전: 홍진경-김숙, 옥탑방의 문제아들: 송은이- 김숙, 전국노래자랑: 김신영)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진행자가 교체되는 것은 사실 흔히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프로그램에 쇄신이 필요할 때 그럴수 있다. 하지만 저 프로그램들의 폐지나 진행자 교체는 대부분 석연치가 않고, 조급하게 이뤄졌다.
<뉴스9>은 이소정 앵커가 마지막 인사조차 못했으며, <홍김동전>은 갑작스러운 폐지에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KBS 측은 <역사저널 그날>의 경우 폐지가 아닌 시즌 종영임을 강조했으나,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나 갑작스러웠다(이전에는 시즌 종영 안내를 미리 했다고 한다). 또 최원정 아나운서의 <역사저널 그날>의 10년을 되짚으며 흘린 눈물 역시 '제자리로 돌아올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전국노래자랑>의 경우 김신영씨에게 일방적으로 하차를 통보했다.
여성이 진행을 맡고 있던 프로그램 3개가 폐지되고, 2개의 프로그램은 남성 진행자로 교체됐다. 특히 시청률이 저조한 KBS의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도, 김숙씨가 메인MC로 있던 예능 프로그램 두 개가 폐지된 것을 정말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을까.
'KBS 정상화'의 기치를 내건 새로운 경영진들이 여성 진행자를 유독 싫어해서? 그게 아니다. 은연중에 '약한 고리'를 여성MC라고 보고, 그들의 '권위'를 보여줄만한 본보기로 선정된 것이다. 만약 남성이 메인 MC를 맡기고 있던 프로그램이었다면 시청률이 떨어지거나 반응이 안 좋아도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래도 ㅇㅇ씨가 하는건데 기다려보자', '구성을 바꿔볼까', '시간대가 문제인가' 등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에는 그런 '핑계'나 '정당화' 대신 바로 칼질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전국노래자랑의 일방적 하차 통보와 진행자 교체(남희석씨)는 젊은 여성 진행자에 대한 KBS의 불신을 드러낸다. 실제로 <텐아시아>는 김신영측이 "젊은 여자 MC는 (프로그램 특성)에 맞지 않는다"는 KBS 내부 의견을 들었다고 보도했다. 송해라는 '거장'을 대체하는 것은 사실 그 누구도 어려웠을 것이며, 그럼에도 김신영씨는 그 프로그램을 이어받아서 안정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너 나가'였다. 즉, 시청률 하락의 책임을 김신영씨에게 뒤집어씌운 격이다.
그런데 김신영씨가 김구라씨나 신동엽씨였다고 해도 이렇게 자를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전국노래자랑에 '중후한 남성'(혹은 방송사의 입맛에 맞는 남성)을 앉히고 싶은, 그래야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는 욕심이 예의와 절차를 모두 무시한 황당한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다.
<뉴스9>과 <전국노래자랑>의 여성 진행자 섭외는 모두 파격이었다. <뉴스9> 이소정 앵커의 기용은, 나이든 남성 앵커 - 젊은 여성 앵커의 구도를 깨는, 지상파 방송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전국노래자랑>의 김신영씨 기용 역시 한 방송사의 대표적 프로그램에 여성 MC를 세웠다는 점에서 방송계의 중요한 분기점으로 해석됐다. 나아가 대부분 남성 메인 MC가 주를 이루는 예능 프로그램은, 잘해야 여성 1 남성 1 조합이었다. 하지만 KBS는 여성 투톱을 과감하게 내세우는 <홍김동전>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분명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내부에서 많은 구성원들이 알게모르게 투쟁하면서 바꿔낸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사장이 바뀐 뒤 단 몇 개월만에 모든 변화는 무위로 돌아갔다.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조직, 자연스럽게 남성 중심의 질서를 강화하는 방송사에서 '다양성'이나 '성인지 감수성' 같은 가치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사회의 주류 집단이 '보기에 편한', 혹은 익숙한 남성 진행자를 쓰고, 고정된 성역할에 안심하는 프로그램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방송사 구성원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불보듯 뻔하지 않나.
KBS의 칼질이 '여성 진행자' 프로그램으로 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성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여기는, 남성은 '길들일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지만 여성은 아예 배제해버리는, 가부장주의가 KBS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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